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의 일부를 출연해 운영하는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예정돼 있던 이사회를 취소하고 갑자기 다음날 ‘깜짝 이사회’를 열어 의구심을 사고 있다.

19일 오전 10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 소재 한국지방세연구원 본청 건물에는 정장차림의 말끔한 신사들이 속속 2층 이사회실로 들어갔다. 그 중에는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도 있었고 정부 행정부처의 공무원도 있었다.

이 공무원은 이틀 전인 지난 17일에 기자와 해당 연구원의 이사회 개최 일정으로 전화했던 주무부처 담당 공무원이었다.

당시 그는 18일 예정돼 있던 이사회가 취소됐고 언제 열릴 것이라는 통보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연기된 것이 아니라 취소됐다는 답을 분명히 했지만 19일 오전 그의 발길은 이사회실로 향했다. 어색하게 기자와 악수를 나눈 뒤 황급히 문을 향해 들어갔다.

연구원 이사회 운영 규정에 따르면 “이사회 의장은 이사장이 되고, 이사장이 이사회를 소집하고자 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이사회 회의 개최 7일전 까지 회의의 목적과 주요내용을 포함한 회의 개최계획과 안건을 이사회 구성원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긴급을 요하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날 열린 이사회는 후자에 해당하는 ‘긴급을 요하거나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로 볼 수 있다. 적어도 이사회에 참석할 만한 자격있는 행정안전부 공무원의 언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경우다.

이날 이사회가 열리기 전 연구원의 임원에게 갑자기 이사회를 소집한 이유와 누가 소집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씀 못드린다”만 되풀이 할 뿐 한시간 가량의 실랑이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이사회 의결 안건에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정성훈 원장의 사임 결정도 포함돼 있느냐는 질문에도 “말씀 못드린다”를 수차례 되풀이하는 게 전부였다.

더더욱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 대목은 연구원이 매년 17개 시도를 포함한 243개 지자체에서 받은 100억원 이상의 출연금의 쓰임새와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다가 정 원장의 자진사퇴 이유에 대해서는 연구원의 부원장뿐만 아니라 실장급 임원들은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고, 질문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에둘러서 일부 알려진대로 취업 규정 변경에 대한 연구원(석사학위 소지)들의 반발 때문에 사퇴한 것인지, 원내에서 대립되는 파벌의 갈등 때문이었는지, 지자체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연구원이 중앙행정부처의 주관을 받는 것에 대한 마찰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런 이유는 모른다”였다.

그렇다면 혹시 기자가 제보 받은 내용의 또다른 불미스런 일로 상급부처의 압박으로 자진사퇴의 모양새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대답 대신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그렇게 연구원 측은 이날 11시에 이상 없이 1시간 반에 걸쳐 이사회를 마쳤다.

늦은 오후 연구원의 고위급 임원이 부랴부랴 기자를 찾아와 “죄송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오늘 이사회 안건은 추경예산에 관한 의결과 정 원장 해임 건을 의결했다”고 짤막한 해명을 했다.

자진 사퇴하겠다는 사직서를 수리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오늘 정 원장은 연구원 정관에 따라 원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현격한 결격 사유가 있어 이사회에서 해임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현격한 결격 사유에 대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원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라 더 이상의 얘기는 곤란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일로 인해 열심히 연구 활동하는 원구원에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후 공석인 연구원 원장직은 연구원 운영 규정에서 정한 직제순위에 의하는 최원구 부원장이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최 부원장은 일본 메이지대학을 나온 경제학 박사로 한국지방세연구원 대외협력센터장, 경영지원본부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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