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고시 출신…혈혈단신 무연고 서울에서 개업한 간 큰 사나이

‘牛步千里’ 22년 외길 투쟁의 주역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신념투철

‘미니 청년세무사 사관학교’ 운영…자신의 전철 안 밟게 뒷바라지

세무사가 되기까지, 개업초창기 사연들은 ‘단장의 드라마’보다 애잔

 

◆ 유년시절 기억에 머무는 일들

나길식 세무법인 택스테크 대표세무사(서울시 구로구 경인로53가길 10 구로동 대명벨리온 1306호)의 고향은 경남 창원시 내서읍 호계리. 호젓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2남 3녀의 셋째로 태어나 자라면서 호연지기를 배웠다.

마을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농촌마을은 동네 모든 사람이 친인척이요, 이웃은 형제 같았다. 호연지기는 누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후덕한 인심이 그의 심성을 호탕하게 만들었다. 어릴적 추억으로는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쑥이나 나물을 캐서 반찬으로 먹었고, 여름에는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면서 다이빙을 하다 이마가 깨지기도 했다.

5~6살 때에는 마을의 큰 연못에서 커다란 보릿단이 떠있는 것을 보고 타면 될 것 같아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을 번한 상황에서 옆집 사는 형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가을에는 벼 추수를 할 때 점심에 밭에서 갓 뽑아온 배추를 우물물에 씻어 쌈으로 먹던 맛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래서 배추쌈을 지금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겨울에는 농한기라 시골에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논에 물을 가둬 얼음을 얼게 하여 얼음놀이를 하다 옷과 양말이 젖으면 불을 피워 말리다 양말을 태워, 구멍이 나면 부모님께 혼날 일을 걱정하며 몰래 숨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소년은 어느새 어엿한 성년이 됐다. 호탕한 성격의 그는 석전경우(石田耕牛-돌밭을 갈아엎는 힘센 황소를 이르는 말)의 이치를 일깨우며 세무사로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솔선수범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에게 황소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닌다. 세무사 외길 22년을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구로지역세무사회 선후배 세무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 세무사의 삶 어떻습니까?

처음 세무사를 하게 된 것은 국가재정의 핵심인 세금문제는 국가가 존속하는 한 반드시 수반되는 것으로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세금에 대한 지식으로 국민들의 납세의식을 향상시키고, 국가를 위해서는 세금 확정과 납부를 위해서 많은 부분을 위임받으므로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세무사라는 직업은 매력적인 직업으로 성공한 세무사가 되려면 다음의 3가지 덕목은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신뢰성이다.

신뢰성은 납세자에게는 조세 전문가로서의 믿음을 줘야하고, 국세청에도 내가 한 일이 정당하며 거짓이 없다는 믿음을 줄 때 세무사로서의 역량도 발휘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잘못된 상담을 하거나 허위의 서류를 제출하여 당장의 문제를 회피하면 추후에 더 큰 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을 갖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 정도이다.

둘째, 성실성이다.

세무사는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성실히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우왕좌왕하면 결국에는 나에게 크나큰 손실로 다가오게 된다. 신고기한에 맞춰 대충대충 일을 하면 추후 조사나 사후검증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다가오거나, 거래처에 대해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보여 제대로 된 거래처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셋째,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세무사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매월 고정적으로 기장료 또는 고문료의 형태로 매월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에게 세무사는 사업관련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세법지식 및 법률적인 지식, 등기, 공인중개사 업무, 부동산, 주식투자, 개인회생 등등 모든 지식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고 상담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세무사는 속칭 잡학박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해둬야 하고 이것이 곧 나의 실력이 되며 고객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위와 같은 열정으로 세무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고객 또는 일반인의 재산형성에 기여하거나, 부당한 세금부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세무사로서 보람을 느끼게 된다.
 

◆ 납세자를 위해 보람된 일들?

첫째, 개업초기에 재건축조합(조합원 1150명, 총분양세대 2,300여세대)의 업무를 수임한 일이다.

대단지의 재건축 세무업무를 수임하여 공사초기부터 공사준공 후 청산업무까지를 수행하면서 많은 경험이 생겼다. 특히 수임한 조합은 조합원과 일반분양 세대가 많기도 하였지만, 아파트 준공 후 다음연도 5월까지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려고 준비하면서 조합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시공사에 확인 한 결과 조합장이 교도소에 긴급 수감된 상황을 확인하고 많이 당황했다.

준공시 회계감사는 마무리 하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종합소득세 신고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료와 업무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조합장의 구속으로 추가적인 업무진행이 되지를 않아 다른 사람이 면회하기 전에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길에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 진행상황을 설명하면서 종합소득세 신고를 위해서 1달여간을 교도소로 출근하여 종합소득세 신고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그 당시의 조합장과 시공사 관리과장과는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둘째, 대학원 지인의 소개로 상속세 신고업무를 수임한 일이다.

피상속인이 건설업을 경영하는 대표이사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상속인은 상속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비록 상속인이 아버지의 회사에 직원으로 근무는 하였지만 회사전반적인 업무와 자금흐름에 대하여는 거의 아는바가 없는 상황에서 상속세 신고기한 마지막 날에 신고서를 겨우 접수할 수 있었다.

이 후 상속세 확정을 위한 조사를 일선세무서가 아닌 지방청에서 조사를 나오게 되었고, 조사를 나오는 날이 상속인의 아들이 태어나는 날이라 다음날에 조사를 나와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다음날부터 조사가 착수됐다. 조사기간이 무려 6개월짜리였다. 개업한지 몇 년 안 된 신참 세무사가 받아든 조사통지서는 섬뜩하였지만 납세자에게 억울한 세금이 과세되지 않게 하기위하여 열심히 소명을 하였지만, 자료가 방대하여 조사기간이 3개월 연장되어 무려 9개월 만에 조사가 마무리됐다.

조사당시 가장 큰 쟁점은 피상속인의 재산 중 오래된 단지내 상가였다. 이 상가를 시가감정으로 감정평가를 의뢰하여 2군데의 평가법인에서 감정을 받아 상속세 신고를 하였는데 감정가액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이유로 세무공무원은 부인하려고 하고, 상속인과 저는 법대로 평가하였는데 무엇이 문제이냐는 쟁점으로 논쟁이 많았다. 그 이후 법정까지 가게 되었지만 일부 패소한 것이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일정금액 이하로 감정한 감정가액은 시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법률이 개정되는데 일조를 한 셈이 됐다.

◆ 구로지역회장 4년의 보람과 업적

2015년 구로지역회장이 되면서 다음 3가지를 공약하였고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없지 않다.

첫째, 젊은 세무사와 원로 세무사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하여 원로 세무사님들의 거래처를 자연스럽게 젊은 세무사들이 수임하도록 하는 ‘후배사랑 업무승계’였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아 성공은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회장 임기를 마친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고, 필요하면 연결을 해주려고 노력중이다.

둘째, 수임료 제대로 받기다. 본회 차원에서도 항상 논의되고 있지만 지역회 차원에서 지방회로 그리고 본회로 자연스럽게 넓혀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잘 못하면 단합의 문제가 발행할 수 있는 사항이라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을 하였다. 처음 개업하는 세무사들이 방문을 하면 충분한 대화를 통하여 저가 및 덤핑은 하지말자고 꾸준하게 설득했다. 이 문제 역시 완벽한 성공은 아니지만 일부를 빼고는 대부분의 청년세무사들이 호응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

셋째, 지역세무사 회원들 간의 유대관계 회복이다.

개업초기 순수 시험출신 세무사로서 간담회 등에 참석하면 선배세무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교류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90년대에는 간담회 이후 지역회장과 운영위원들만 점심식사를 하고 일반회원은 밥을 같이 먹지도 않는 것에 많이 놀랐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간사를 하면서부터 간담회 이후에는 참석회원들이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으며, 새로 개업하거나 전입한 회원들은 특별히 챙겨 기존 회원들과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도록 노력하였다.

지역세무사회장 4년을 지나고 생각할 때 조그마한 구로지역의 회장이었지만 회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지역세무사회장을 4년을 하면서 가장 큰 수확은 지역회원 친목도모 및 본회의 업무영역도 다소 알게 되고 본회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지역회 회원들의 힘이 보탬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어 보람으로 생각한다.
 

◆ 인생철학?

첫째, 우보천리(牛步千里)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끝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것으로 작은 것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하여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성실성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둘째, 인빈출일(寅賓出日)

해가 떠오름을 삼가 손님을 영접하듯 맞이하여 생업에 열중 힘쓰라는 뜻으로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셋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더욱 새로워진다는 뜻으로, 현대사회에서 생각이 고정관념에 빠져있으면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처세는 유연하게하면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당찬 각오가 있어야한다. 그러다 보면 이것들이 쌓여서 큰 결과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려고 한다.

◆ 자식농사?

세무사 개업 3년차에 결혼하여 다음연도에 아들을 출산하였고, 2년 후 딸을 출산하여 1남 1녀를 두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의 중요성이 클 것으로 생각하고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딸이 3학년일 때 말레이시아로 1년간 어학연수를 보내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게 한 것이 도움이 되고 있다.

아들은 2019년도에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을 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여 세무사나 회계사가 되어서 로스쿨에 진학하면 좋겠다는 게 아버지의 바람인데 어디 자식농사 부모마음처럼 됩니까?

딸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으로 특성화고등학교인 대동세무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딸이 현재 나의 직업을 물려받는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생각에서 특성화고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딸은 대학진학을 희망하고 있어 가업승계 역시 두고 봐야 알 것 같다며 의문표를 남긴다.

◆ 지식농사(저서 논문, 학위),

▷석사학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세무관리학과(경영학 석사),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건설개발학과(부동산학 석사)

▷박사학위: 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부동산학 박사), 논문제목: 양도소득세제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분석

▷박사수료: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조세법 전공)

◆ 세무사가 부동산박사학위는 왜? 업무에 도움이 되나요?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의 최고과정을 다니면서 부동산학 석사, 박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래처 상담이나 본인의 재테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건설개발학과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 학과를 지원하게 된 것은 부동산 시행업무에 관심이 있었고, 시행을 하기위하여 지인들과 현장의 임장활동도 많이 하면서 부동산에 대한 시야가 좀 넓어졌다.

박사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석사에서 끝나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박사까지 공부하면서 시행 및 부동산 정책에 대하여 공부하므로 부동산 관련 일을 할 때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업무적으로 도움된 일도 많았다. 먼저, 저의 조언에 대하여 신뢰가 형성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거래처의 다양한 상담에 대하여 조언을 구할 주변의 지인들이 많이 있어 기존 거래관계가 돈독해지는 면이 많았다.

실례로 강남 3구에 거주하는 어느 기업대표의 경우 아파트 단지의 경매물건에 대하여 문의하여 경매를 낙찰 받게 해주었고 잔금까지 납부 하는 일을 도왔다. 그 기업대표는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며 지금도 인연을 끊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 재테크 자문을 구할 때도 박사라는 직함은 고객과의 대화에서 신뢰감을 주게 되어 업무처리가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꼭 하고 싶은 것

첫째, 신규 세무사들의 정착을 돕는 업무다. 가칭 ‘청년세무사 미니 사관학교’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그가 새내기 세무사들을 돕는 것은 개업초기 뼈아픈 상처 때문이다. 그는 비관서 출신으로 세무사 합격 후 개업을 할 때 선배세무사로부터 아무런 조언을 받지 못하였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개업을 했다.

지방고등학교와 지방대 출신, 세무사자격증 하나만 가지고 혈혈단신 무연고지 서울에서 개업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짓이며, 또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도전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성공이든 실패든 세무사개업은 서울에서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무사 업을 안정시키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주변에 쉽게 조언을 구할 선배세무사를 찾지 못하였고, 합격 동기나 조금 빨리 합격 한 선배세무사들의 조언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수습이 끝남과 동시에 개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몇 년간 근무 후 개업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근무를 하면서 거래처관리, 자금관리, 직원관리, 영업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개업 후에 할 기본적인 업무를 배우고, 꾸준한 세법 공부로 실력도 많이 향상될 것이다. 따라서 저는 매년 수습세무사를 받아서 수습이 끝나면 근무로 전환하여 최소 3년은 근무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3년차가 끝나면 신접살림(개업)을 내보내고 있다. 현재 저희 사무실에는 4명의 근무세무가 있는데 3년 근무를 채운 이희민 세무사가 6월1일 신접살림을 차린다.

둘째, 창업 및 재도전 교육사업 헌신이다.

60세 이후에는 세무사 업무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사회교육원이나 대학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창업이나 사업 실패 후 재도전하는 분들을 위하여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무료로 강의하여 수강생들의 사업이 안정되고 재기에 성공하게 하도록 도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

셋째,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주변에만 둘러보아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결손가정이나 희귀병어린이 등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면서 살아가고 싶다. 우리들의 희망이자 미래인 어린이가 경제적인 문제로 기본적인 의식주 뿐 만아니라 학업을 포기한다면 사회적으로 크나큰 손실일 것이다. 그러한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단체에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나누면서 더불어사는 삶을 살고 싶다.

◆ 꼭 남기고 싶은 것

저의 인생 최종목표는 저의 장례식장에 저를 아는 지인 중에 단 1명이라도 찾아와서 아들딸에게 ‘너의 아버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열심히 살다가 가셨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소망한다. 이런 이야기를 제3자로부터 듣게 되면 제 아들과 딸이 세상을 살아갈 때 본인들이 그래도 괜찮은 부모님보살핌을 받았다고 느낄 것이며, 세상을 살면서 어려움에 부딪칠 때 그 것을 극복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 존경하는 인물은? 이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부모님이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자식 사랑은 비슷하겠지만 저의 형제들에게 부모님의 사랑은 남달랐다고 생각된다.

아버님은 4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먼저 고향을 떠난 형님들과 누나들을 대신하여 할아버지 할머니를 봉양하면서 가난한 시골에서의 삶을 영위하셨다.

저의 어머님은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서 5남매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하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기간의 병수발을 하면서도 가정의 화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자란 저 또한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비록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만이 가난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부모님께서는 저의 형제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셨고, 심지어 저의 형은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진학할 만큼 남들과 차별화된 교육관을 갖고 계셨다.

저 또한 처음에 마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않고 대학을 진학하고, 세무사 시험공부로 5년이나 소비하는 동안 저희 부모님은 주변 분들로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제가 합격하는 그 순간까지 믿어주신 것이 지금의 내가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버님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독학으로 한문공부를 하였고, 독학으로 세상살이를 배우면서 인생을 설계하신 것 같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농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마을이장을 하면서 마을 소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지어서 생업을 영위할 수 있었기에 마을 이장을 몇 십년째 장수하셨고, 이장 일을 하면서 면, 군사무소 등를 방문하여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였고, 자격증은 없지만 면소재지에서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해결사 같은 분이셨다.

이러한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자란 탓으로 전문자격증을 취득하면 타인에게 도움이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세무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아버님이 하신 것처럼 신뢰와 의리로 대인관계를 하면서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생활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 나길식 대표세무사 He is?

□태어난 곳: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호계리
□나 이: 54세

□학력
초등학교: 중리초등학교(1979년 졸업)
중학교: 내서중학교(1982년 졸업)
고등학교: 마산상업고등학교(1985년 졸업)
대학교: 경남대학교 회계학과 졸업(1994년)
대학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세무관리학과 졸업(경영학 석사)(2000년)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졸업(부동산학 석사)(2006년)
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졸업(부동산학 박사)(2010년)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수료(조세법학 전공)

□경력

세무법인 택스테크 대표세무사
구로지역세무사회 회장(전)
구로세무서 납세자보호 위원장(전)
한국세무사고시회 부회장(전)
중소기업의 경영현황연구 및 제도개선을 위한 자문위원(전)
구로구 부동산평가위원회 위원(현)
한국세무사고시회 감사(현)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현)
남부지방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 위원(현)
구로구 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위원(현)
구로구 양성평등위원회 위원(현)
서울시 마을세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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