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서에서 부과한 세금이 억울하여 관내에 이름난 세무사를 찾았다. 그런데 그 세무사는 거액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결국 납세자는 상담만 하고 일을 맡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세무서에서 개최한 국세심사위원회에 참석을 했더니 자신이 상담을 했던 세무사가 국세심사위원으로 참석해 있었다. 심사결과는 ‘기각’이었다. 이 납세자의 심정을 어땠을까요.

이 납세자의 사연은 이렇다. 자신은 S사의 명목상 주주로 참여하는 과점주주에 해당되어 3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세금을 물게 됐다.

그에게 세금고지서가 날아든 것은 지난해 11월. 관할 세무서는 S업체에 대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사업연도 법인세 일반통합조사를 실시해 2018년 9월 세금을 경정‧고지했다. 체납법인이 2015년 제1기~2기 과세기간 부가가치세 약 1억 9000만원과 2015년도 사업연도 법인세 1억 3000여만원 등 총 3억2600여만원을 납부하지 않자 과점주주에 해당하는 K씨에게 100% 제2차 납세의무를 지정해 납부통지서를 발송한 것.

S업체는 K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L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회사였다. L씨는 자기 부모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소비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10개월간 35억원 상당의 현금을 찾아 사용했다. 이 차명계좌가 세무서의 조사에서 포착되면서 9억여원의 부가세와 법인세를 맞은 것이다. 이중 K씨에게 3억 2600만원이 부과된 것.

이런 납세통지서를 받자 K씨는 소위 그 지역에서 잘 나간다(?)는 H세무사를 소개받아 상담을 했다. H세무사는 상담을 하면서 ‘(불복)금액이 커서 구속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5000만원은 계약금으로 하고, 성공보수료로 5000만원 등 총 1억원을 제의했다고 K씨가 전했다.

K씨는 너무 큰 액수여서 ‘한번 생각해보겠다’며 거절한 후 H세무사 사무실을 나와 다른 지인 세무사와 상의했다. 그 지인 세무사는 “나도 그렇게(수수료 1억 제의)했으면 떼돈을 번다”면서 세무서에 가서 부인(사실혼)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했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조언을 했다. 지인 세무사의 말은 들은 K씨는 H세무사의 거액 제의에 대한 불쾌감이 더 커졌다.

K씨에 따르면 S사는 아내(사실혼)가 신용불량자여서 법인회사 대표가 될 수 없어 직원을 회사 대표로 내세우고 실질적인 경영을 했다. K씨는 가족과 함께 주주로 참여했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명의만 주주라는 주장은 그가 법인 청산인이 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K씨는 자신은 광고회사를 경영하면서 아내 회사에 주주로만 참여했을 뿐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관할 세무서의 처분에 불복해 지난 2월 14일 이의신청을 했다. 관할 세무서는 국세심사위원회를 열어 이 안건에 대해서도 심의를 했다.

그런데 그 심사위원회에 자신의 세무문제를 상담했던 H세무사가 참석해 있었다. K씨는 ‘뜨악’ 할 수 밖에 없었다. K씨는 새로 선임한 담당 세무사와 함께 심사에 참여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지만 결과는 ‘기각(3월14일 통보)’이었다. K씨는 H세무사가 그런 거액을 제의했던 연유가 혹시 이것 때문이었던 것인가라는 망측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곧바로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불쾌감도 떠나질 않았다. 자신이 상담을 했던 사건이 심사위원회에 상정된 것을 알았다면 스스로 그 사건에 대한 심사에 참석을 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최소한의 양심 말이다.

현행 국세기본법은 불복과 관련 해당 사건에 관여가 되었을 경우 대리인은 스스로 안건의 심의‧의결에서 회피(제척)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 심사안건이 심사위원에게 수일 전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그는 최소한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수일 전 해당사건이 자신이 참석할 위원회에 상정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제척사유를 무시하고 심사에 참석을 한 것이다.

‘H세무사는 해당 세무서에서 공직을 마친 국세경력자로 세무서와의 관계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는 지역 세무사들의 이야기가 강하게 오버랩됐다.

세무서 국세심사위원회는 통상 내부위원을 제외한 외부위원 13명 가량의 위원단(풀제)으로 운영된다. 회의 때마다 위원단 중에서 사건관련인 등을 배제한 후 정원을 구성해 회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심의 전 윤리강령에 서명해야 한다.

국세심사위원회는 위법 또는 부당한 과세예고 통지나 고지에 따른 과세전적부심사 및 이의신청을 처리하는데, 여기에서 기각이 되면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에서 재판을 해야 한다. 문제는 납세자가 일선 세무서에서 끝낼 수 있는 사안을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재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국세심사위원회 심의는 납세자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당연히 K씨는 심사위에서 자신의 사건을 상담했던 외부위원의 얼굴을 보면서 ‘과연 세무서 국세심사위원회의 결정은 공정했느냐’라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물론 사건의 결론이 H세무사의 한 표로 기각되었는지, H세무사가 어떤 의견을 개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무사업계에서는 “이것은 세무사 윤리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형사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자신이 상담을 했으면 심의 전 윤리강령에 서명을 해서는 안되며, 세무서에 미리 스스로 배제를 요구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역에서 국세심사위원을 지낸 또다른 세무사는 “이런 경우는 확인은 어렵지만 자칫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심의를 하게 될 수도 있어 공정하게 심의를 했다고 볼 수 없고, 이런 절차적 문제가 있다면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면서 “자신이 상담을 했거나 특수관계에 있는 지인이면 자신이 스스로 관련 심사위를 회피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해당 세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세무서 관계자의 말이 ‘더 가관’이다. 그는 “상담이 성사된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 가정이지만 K씨가 다른 마음을 품고 관내의 모든 세무사들을 찾아 상담을 했다면 해당 사건은 외부위원이 없는 상황에서 위원회를 열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기 때문 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이 상담했던, 그리고 거액을 제의했던 사건이 자신이 참석하는 심사위에 상정된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한다면 스스로 기피하여 납세자로부터도 신뢰받고, 세무서의 심사에도 공정을 기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세무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국세심사위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자 자격’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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