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골때리는 인사다.' 국세공무원들 최고의 꿈인 지방국세청장에 임명된지 6개월여 만에 고공단가급(1급)인 부산국세청장에 이동신 대전국세청장이 임명됐다. 또 지방청 국장에서 본청 국장으로 영전한지 6개월여 만에 국세청의 최고 요직으로 불리는 조사국장에 이준오 법인납세국장이 임명됐다.

새 부산청장에 임명된 이동신 청장은 충북 충주 출신이다. 울산 학성고를 나와 경상도와 연(緣)이 있다고는 하지만 부산청이 1급청으로 격상된 이후 첫 충청도 출신인사가 수장에 임명된 것이다. 임성빈 국장이나 강민수 국장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산 사람들의 낙담이 크다.

신임 이준오 조사국장은 전북 고창 출신이다. 서울국세청장으로 임명된 김명준(전북 부안) 전 조사국장에 이어 또 전북 출신이 조사국장에 오르면서 대를 이었다. 이번 인사가 발표되기 전 조사국장은 임성빈 전 서울청 조사4국장(부산)이나 강민수 기획조정관(경남 창원)이 임명될 것이란 하마평이 무성했다. 보기 좋게 틀렸다. 이준오 국장의 임명은 국세청 세수의 40%가량을 차지하는 김명준 신임 서울국세청장과 함께 국세청의 실권(조사권)을 전북 출신들(호남라인)이 꿰찼다는 의미로써 예사롭지가 않다.

◆ 호남의 ‘희생’에 호남이 ‘먹었다’

김명준 서울국세청장의 임명도 현재의 국세청 인재풀에서는 ‘잘한 인사다’라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어차피 힘센 자리에 임명된 것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토를 달면 미움만 산다는 것이 세상민심이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영혼 없는 평가를 내놓는다. 하지만 세정일보의 눈은 본청 조사국장을 지냈다고 단번에 국세청의 3인자(사실상 2인자) 자리에 앉혔다는 것에 과연 이번 인사가 ‘김현준식 인사’일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음을 전한다.

과거 국세청 인사 관행은 국세청 조사국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와 중요성에 따라 본청 조사국장을 지내면 무조건 1급으로 승진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시절이 바뀌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시절 조사국장을 1년 넘게 했던 김영기 전 조사국장은 2급청인 대구국세청장으로 가라는 말에 ‘사표를 썼다’. 또 그 이전에는 허병익 전 조사국장은 당시 2급청인 부산국세청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사국장 출신을 2급청장으로 보내느냐는 불만이 있었으나 수용했고, 그는 이후에 영전해서 국세청 차장(청장대행)까지 지냈다. 결국 김명준 서울국세청장과 이준오 조사국장의 임명은 이은항 차장(전남 광양)과 김형환 광주청장(전남 해남)의 희생에 따른 ‘호남 달래기’라는 보은의 성격도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면서 이 역시 김현준 청장의 인사가 아닌 ‘정치적 인사’인 것 같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 ‘2인자와 직행코스’의 기시감

이번 인사에서는 또 김대지 차장과 김명준 서울청장의 구도가 던지고 있는 기시감(旣視感)이다. 대개 검찰의 인사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나이와 행시 기수 등에 따라 청장보다 앞설 경우 청장의 지휘권이나 조직 장악력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관료사회의 ‘미덕’이지만 인재를 아끼는 국세청에서는 드물긴 하지만 어쨌든 국세청장 자리를 두고 경합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당당히 2인자 자리에 앉히고, 최근 들어 국세청장 직행코스로 자리 잡은 서울국세청장 자리에 김명준 서울청장을 임명하면서 뭔가 스텝이 꼬인 것 같다는 뒷말이 나온다.

국세청장은 정해진 임기가 없는 자리다. 하지만 경찰, 검찰 수장의 임기가 2년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국세청장의 적정 재임기간도 2년 정도로 본다. 직전 한승희 청장도 딱 2년을 재임했다. 이럴 경우 김대지 차장과 김명준 서울청장은 국세청 인사 관례상 1년 뒤 새 국세청장으로 올라서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물론 차장의 경우 장수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결국 이들이 국세청장이 되기 위해서는 김현준 청장이 ‘단명’해야 한다는 역설이 나온다. 자칫 차기 청장을 둘러싼 잡음이 나올 수도 있다는 염려다. 그만큼 김현준 청장의 조직 장악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읽히면서도 권력의 속성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은 없지 않다.

◆ ‘행시에 의한, 행시를 위한’

▶김현준 국세청장(행시35회, 서울대), ▶김대지 국세청 차장(행시36회, 서울대), ▶김명준 서울청장(행시37회, 서울대), ▶유재철 중부청장(행시36회, 서울대), ▶이동신 부산청장(행시36회, 고려대), ▶최정욱 인천청장(행시36회, 서울대), ▶권순박 대구청장(8급특채, 세무대), ▶한재연 대전청장(행시37회, 서울대), ▶박석현 광주청장(행시38회, 서울대). 이번에 임명된 국세청 2급이상의 기관장 현황이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9명중 8명이 행정고시이고, 7명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김현준 국세청호의 첫 인사가 출신지역별로 배려된 인사라는 일부의 철모르는 평가 속에 그간 99%를 차지하는 비고시 출신들에게 ‘9급에서 출발하더라도 1급까지 올라갈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는 인사를 하겠다’고 공언해온 이전 국세청장들의 인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행시와 서울대 출신만을 위한 ‘싹쓸이 인사’에 9급과 8급에서 출발한 대다수 세무공무원들의 박탈감은 어찌 감당해야 할까.

국세청 인사에 밝은 한 전직 국세공무원은 “김형환(8급특채)이를 차장이나 서울청장, 아니면 최시헌(8급특채)이나 이청룡(8급특채)이를 부산이나 대전청장으로 보낼 수도 있는데 왜 ‘행시천하, 서울대 천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김현준 청장의 인사가 아닌 ‘정치에 밀린 곡절이 많았던 인사’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현준 청장 주변인들은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김 청장의 롱런을 자신있게 점친다.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김현준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문민정부 이후 최연소 청장으로 알고 있다. 뜻 깊다”고 했다. 김현준 청장 주변에서는 노무현 정부시절 이용섭 국세청장(현 광주광역시장)처럼 승승장구 할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게 한껏 힘이 실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용섭 전 국세청장은 이후 청와대 혁신수석, 행안부장관, 건교부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후 광주시장을 맡고 있다.

어쨌든 김현준 국세청호의 주요 보직이 짜여졌다. 이제 김현준 청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그의 롱런과 그가 주창한 ‘국민의 내일을 위한 보다나은 국세청’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국세청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을 돕는 봉사기관으로 가야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잘 실천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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