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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명나라와의 국경 철령위 ‘강원도 철령’ 아닌 ‘요동의 철령’이었다

기사승인 2019.10.08  1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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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7일 국회에서 한국간도학회 주최 학술세미나 개최

정태상 교수, “일본 학자들도 일제강점 초기에는 ‘요동의 철령’이라고 주장”
 

▲ 7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한국간도학회 주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고려말인 1387년 12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철령을 양국간의 국경으로 할 것을 고려에 제의해 왔는데, 그 철령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강원도의 철령이 아니라 요동의 철령이라는 기존 학계와 다른 주장이 제기됐다.

사실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의견이 조금씩 제기되어 왔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그렇게 잘못 알려진 원인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따라서 고려말에 문제가 된 철령이 강원도 철령이 아니라, 요동의 철령이라면, 고려말 명나라와 고려간의 국경이 압록강 이북 요동땅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의 정태상 연구교수는 지난 7일(월) 국회 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 개최된 한국간도학회 주최 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그 근거로 뜻 밖에도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1913년),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1918년) 등 일본 학자들조차도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요동의 철령’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 <그림 1> 1387년 12월 명태조가 국경으로 삼고자 한 철령의 위치에 관한 주장의 변화.

◆ 그런데 왜 ‘강원도 철령’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가?

정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부터 조작했다는 것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발간한 총35권의 ‘조선사(1938년)’에서 ‘요동의 철령’을 압록강 이남 ‘강계(江界)’로 끌어내리고, 다시 조선사편수회 수사관(修史官)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 1941년)가 ‘강원도 철령’으로 굳혔다. 해방 후에도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 출신 이병도 박사를 중심으로 스에마츠 야스카즈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러한 주장의 사료상의 근거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고려의 사료가 아니라 ‘명실록, 명사, 요동지’ 등 중국측 사료이다. 명실록(1388.4.18) 등에 의하면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압록강까지는 고려 땅 임을 분명히 인정했다.(高麗地壤舊以鴨綠江為界) 또한 고려에서 철령과 그 북쪽 땅이 고려땅임을 주장한 것에 대하여는 철두철미하게 고려가 ‘요동에 있는 철령’과 그 이북 땅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한 것으로 단정하고, 거부하는 외교문서를 고려에 보내왔다는 것이다.

지명이 중국과 우리 측 양쪽의 공통적으로 있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지금도 중국 요녕성에는 철령이라는 이름의 큰 도시가 있으며, 그 당시에도 요동에 철령이 있었던 것이다.
 

▲ <그림 2>조선사편수회 『조선사』(1938년)의 철령위 부분.- 조선사편수회(편),『조선사』 제3편 제7권, 조선총독부, 1938, 273쪽.
“명나라가, 철령위를 고려 강역내(강계)에 설치하려고 하였다”고 자의적으로 써넣고, 지명들을 모두 압록강 이남의 지명인 것으로 우겨넣었다.

◆ 왜곡의 근원(根源)은 조선초에 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정 교수는 철령과 관련한 사실이 잘못 알려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위화도회군 세력이 건국한 조선왕조의 초기에 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측 기록에는 고려의 요동정벌 이전에 이미 명나라에서는 요동땅 봉집현에 철령위를 설치(1388.3.27)한 것으로 되어있는데도, 고려측 기록에는 이를 누락시키고(고려사 연표에만 간략히 기록), 고려에서 외교를 잘하여 명나라에서 철령위 설치 논의를 중지한 것처럼 왜곡되게 기록했다.

철령위 설치 문제는 외교적으로 잘 마무리됐으므로 고려 우왕과 최영이 주도한 요동 정벌은 쓸데없는 짓이었으며, 따라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정당한 것으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 현재에도, 한국측에 보존되어 있는 사료만 보면, 당시 명나라에서 '강원도 철령'을 국경으로 하여 철령위를 설치려고 한 것처럼 보이고, 중국측의 사료를 보면 시종일관 '요동의 철령'을 국경으로 하고자 하여, 요동의 철령에 철령위를 설치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주된 원인은 위화도 회군 세력에 의해 고려말의 역사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그 후 실학자의 연구에 의하여도 이러한 왜곡은 바로 잡아 지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당시에는 중국 측 사료의 수집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실학자라 하더라도 태조 이성계가 주도한 위화도회군에 관한 문제를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
 

▲ <그림 3> 중국 요녕성 철령시 철령박물관.

이에따라 정 교수는 현재 중국측에서는 고려말에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강원도에 설치’했으며, 강원도 철령의 북쪽은 명나라 땅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꼬집으며,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지 않음으로 인해서 중국 측에서 억지 주장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이러한 중국 측의 억지 주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에 우리 세대에서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큰 화근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서주영 편집인 sejungilbo@naver.com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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