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갈등 속 우호지분 확보 위한 물밑 작업 한창

오너일가·외부세력 경영권 확보 서로간 '캐스팅보트'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이 3월말 경영권 향방을 결정짓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분 싸움에서 확보할 지분율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다. 경영권을 둘러싼 '내 편 만들기' 물밑 작업도 한창인 모양새다.

지난해 4월 고 조양호 회장이 타계하면서 비슷한 비율로 쪼개진 지분이 직계 가족에게 상속됐다. 유훈으로 회사와 집안 대소사는 가족이 화합해서 경영해 나갈 것을 남겼다. 하지만 1년도 채 안돼 회사 경영의 주도권을 놓고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남매의 엇갈린 해석으로 가족간의 갈등은 심화됐다.
이번 주총의 최대 관심사는 그룹 총수에 오른 조 회장의 경영권 사수 여부다.

현재 한진칼 지분 구조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6.52%, 조현아 대한항공 사장 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5.31%, 정석인하학원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4.15%, 그레이스홀딩스 17.29%, 델타항공 10.0%, 반도건설 8.28%, 국민연금 4.11% 등이다.

선친의 유훈대로 가족이 화합해 오너 일가 지분을 합치면 이번 주총에서도 조 회장은 무난하게 경영권과 사내이사직을 확보할 수 있다. 화합한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한 28.94%와 '한진家 백기사'로 알려진 델타항공의 지분까지 더하면 38.94%로 조 회장의 경영권 사수는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의 선제공격으로 한진그룹 '남매의 난'이 본격화된 가운데 오너일가가 대립하고 외부세력의 주식매입이 이어지면서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지분율 셈법은 복잡해졌다.

지난해 12월 조 전 부사장은 공개적으로 동생인 조 회장의 그룹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가족 공동 경영이라는 선친의 유훈을 어기고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며 독단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성탄절에는 어머니 이명희 고문과 조 회장이 크게 싸워 집안의 기물이 파손되는 다툼이 벌어졌다. 큰 딸인 조 전 부사장이 경영권 문제를 제기한 뒤 어머니 이씨가 누나를 두둔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조 회장이 반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 두 사람의 공동명의 사과문이 나왔지만 갈등이 완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었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위해서는 주총에서 우호 지분 확보가 절실한 입장이고, 조 전 부사장은 지난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경영 일선에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어차피 조 회장과 누나 조 전 부사장이 화합하지 못해 남매 중 하나가 경영권을 잡아야 한다면 5.31%의 지분을 가진 어머니 이명희 씨의 선택이 중요해진다. 또 우호 지분으로 여겨졌던 델타항공과 반도건설마저 남매의 싸움에서는 누구에게 우군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끊임없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해 온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그레이스홀딩스) 역시 17.29%까지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다.

한진칼 지분 6.28%를 가졌던 반도건설은 "한진그룹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순 투자 차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계열사인 대호개발을 통해 지난해 말 한진칼 지분을 8.28%로 늘리고,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바꾼다고 지난 10일 공시했다.

조 회장은 최근 '백기사'로 알려진 델타항공을 비롯해 주요 주주와 접촉에 나서는 등 우호지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 대한항공 임직원을 한진칼에 파견한 사실도 알려져 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는 작업을 위한 선제적 움직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누나인 조 전 부사장도 지난주 KCGI와 반도건설 관계자를 만나 향후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의 연대에 대한 대응 차원인 셈이다.

반도건설은 한진칼 지분을 2%포인트 늘려 3대 주주가 됐다. 당초 권홍사 반도그룹 회장은 고 조양호 회장과의 친분 때문에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혀 오너 일가에 우호적 지분으로 분류됐으나, 최근 '경영 참여'의 뜻을 비춘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과 손을 잡는다면 조 회장에게는 치명적이 아닐 수 없다.

반도건설은 지난해 10월 8일 계열사 반도개발과 대호개발, 한영개발을 통해 한진칼 지분 5.06%를 확보하며 한진가와 KCGI의 지분 경쟁 구도에 처음 등판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에서 13위를 차지한 중견 건설사로, 1980년 부산에서 설립돼 아파트 브랜드 '반도 유보라'를 공급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조 부사장의 입장에서 어머니와 조 전무, 반도건설과 힘을 합치면 26.55%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KCGI까지 최대한 합류하게 된다면 최대 43.84%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KCGI나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을 손들어 준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 주주로 가장 지분이 많은 KCGI는 "주주들 간의 합종연횡 싸움에 끼지 않고, 독자노선을 걷겠다"고 밝힌 바 있고, 반도건설 관계자는 "현재로선 누구 편에 선다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이 이사로 재선임되려면 가족들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조 전 부사장과의 싸움이라면 어머니와 여동생의 지원만큼은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수관계인과 델타항공까지 합쳐도 20.64%에 그치고 이 고문과 조 전무가 합세해야 32.45%가 확보된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어머니와 여동생 대신 KCGI와 반도건설을 얻는다면 32.06%가 된다. 따라서 남매간의 경쟁에서 가족의 힘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일 수 밖에 없다. 조 전 부사장 측 법률대리인은 법무법인 원이 맡고 있는데 이곳 관계자는 "아직 당사자들과 협의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는 밝힐 수 없다"며 "모든 당사자와 협의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바 없다"라고 밝혔다.

국민연금과 기타 기관투자자들의 선택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연금도 4.1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에 이들의 선택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최근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 라인'을 의결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또는 외부세력 누구든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캐스팅보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조 회장은 주총에서 출석 주주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연임에 실패하여 그룹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다급해진 조 회장이 결국 분할 경영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다. 다른 가족들에게 일정 경영권을 보장하고 주총 전에 갈등 봉합을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계열분리 경영시, 사세 위축을 불가피할 것이며 노조 및 그룹 내부 임직원들의 반발도 클 것으로 짐작된다.

일각에서는 남매의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이 ‘조원태 체제’를 유지하면서 가족과 내분 수습에 집중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이번 3월 말로 예정된 한진칼 주총은 이사의 선임과 해임 안건에 대해 일반 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을 얻으면 안건이 통과된다. 지난해보다 사안이 훨씬 더 중요해진 만큼 올해 있을 한진칼 주주총회 참석률은 작년의 77.18%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