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이 영화는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1828.9.9.~1910.11.10.)의 원작으로서, 5년여 동안 집필한 천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영화한 작품이다. 따라서 원작자와 러시아 문학에 대해 조금을 알고 감상해야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는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영지 야스나야 폴라냐에서 태어나 세계 장편 소설의 최고봉이라 알려진 전쟁과 평화를 비롯하여, 안나카레니나 등 불세출의 걸작을 저술하였다.

그 외에도 그는 구십여 편의 소설을 남김으로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누구나 잘 알듯이 오늘 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대 문호로 추앙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 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입체적이고도 다양한 경험을 즐김은 물론, 여성 편력과 도박의 유혹 앞에 무방비 상태였으며, 쾌락에 굴복한 직후에는 처절한 환멸이 몰려와 자괴감과 회심 속에서 삶을 영위 하였다고 한다.

특히, 톨스토이는 1848년에 고향을 떠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방탕한 생활에 빠져 빚을 많이 지게 되었다. 급기야 1855년에는 도박 빚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돈으로 마련된 야스나야 폴라냐의 저택을 매각해야 하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 요인들은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 저술과 사상 "화내지 말고, 색정을 품지 말며, 맹세로써 자신을 구속하지 말고,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며, 정의나 불의를 모두 잘 대해 주라"라는 즉, 톨스토이즘(Tolstoyism)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제정 러시아는 동. 서방 문화의 혼재 속에 국가로서의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해 나가기 위해 그동안 지향해 왔던 비잔틴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동방 문화를 탈피하고 서방문화 도입을 위해 노력하였다.

독일과 프랑스 중심의 서방 문화를 흡수, 정착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고 자연히 개방과 폐쇄,진보와 보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혼재 하여 작동되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갈등하고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그 후 에까떼리나 대제에 의해 프랑스 문화를 더욱 과감하게 흡수하면서 서방 국가로서의 면모를 담아 가고 있었다. 따라서 개인들의 삶도 정치제도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복잡한 배경에서 출품된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화한 안나까레니나는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매력적인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고 너무나 유명한 영화로 제목 자체를 모르는 독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그리고 유명세를 타고 수차례 리메이크 되어 세계적인 배우, 비비안리, 그레타 가르보, 소피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경쟁한 안나까레니나로 유명도가 높은 영화이다.

또한 2007년 2월, 영국의 더타임즈사가 주관하여, 544편의 세계적인 문학 작품을 125명의 유력 작가들의 평가 결과,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 되었다니 톨스토이와 안나까레리나의 위상과 작품성을 미루어 짐작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 된다.

특히 도스토 예프스키는 안나까레니나에 대해 "전대 미문의 훌륭한 소설이며 천재적 예술성을 지닌 작품 이다. 어느 누가 이런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겠는가"라고 극찬 하였으며, 톨스토이도 "자신의 진정한 소설은 안나카레니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영화 안나까레니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이 영화는 19C, 당대 러시아의 사교계에서 매혹적이고 사랑스럽던 여주인공, 안나까레니나 스스로 자신의 열정, 자신만의 불같은 사랑, 자기만의 새로운 삶을 선택하여 추구 하다가 제정 러시아의 향락과 윤리적 잣대의 모순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질식해 가는 과정을 그렸고, 특히 그 비극적 결말이 인상 깊은 영화이다.

고루하고 위선이 난무하는 제정 러시아의 귀족사회에서 미모와 교양이 출중하고 개방적인 신(新) 여성, 안나까레니나의 격정적이며 비자발적이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중심으로 전개 된다.

그 와는 상반된 장소, 시골 농장 포크로 포스크 에서는 소박한 이상주의자이며 지주인 콘스탄틴 레빈의 사랑 이야기도 상호 극명하게 대비 되면서 동시에 병행 된다.

영화 안나까레니나의 화면이 열리면서 영화속 주요 인물중 하나인 시골의 영주, 평범한 삶이 아름다운 삶으로 여기는 소박한 레빈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없는 허허벌판, 설원에서 수많은 늑대 떼들에게 숨을 헐떡이며 쫓긴다. 그는 목숨을 경각에 두고 마냥 앞을 향해 달린다.

달리던 도중, 어쩔 수 없이 수십 미터 깊이의 함정에 뛰어 내렸고 한동안의 수직 낙하 후, 팔에 와닿은 뿌리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게 되었다.

우물 위에서는 생쥐가 레빈이 잡고 매달려 있는 생명줄인 뿌리를 갈아 먹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야수가 레빈을 금방 삼켜 먹기라도 할 듯이 포효를 하며 입을 벌리고 있는 장면이 전개 된다.

금방 죽을지도 모르는 긴박하고도 아찔한 그 순간, 레빈은 "죽음의 공포 보다는 사랑을 해보지 못하고 죽는 공포가 더 끔직하다"는 말을 하며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모든 시름이 한방에 날아 갈 것"같은 귀족이자 미모의 여인, 키티를 그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안나까레니나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독백하 듯 중얼 거린다. 레빈도 키티를 좋아하지만 내심 매혹적인 안나까레니나에 대해 연정을 품고 있는 기색이다.

이 장면을 통해서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면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 받을 것이다"라고 갈파했던 알베르 까뮤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은 어떻게 심판받을까도 궁금했다.

과연 뚜렷하게 다른 삶을 영위한 레빈과 안나까레니나에게 있어서 "사랑을 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죽음보다 더 큰 공포"'라는 레빈의 말처럼 '그 사랑' 이란 무엇일까, 또 두 사람이 이루어갈 사랑의 질(質)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케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나까레니나, 과연 이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

남편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출중한 역량과 능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로서 부와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전통과 풍습에 충실한 포용력 있고 모범적인 귀족이다. 또한 화려한 저택과 계절별 휴식을 위한 멋진 별장의 소유, 그리고 귀엽고 잘생긴 8살 된 아들이 있다.

또한, 안나까레니나 자신은 솔직하면서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미모에 고결함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우아한 자태와 교양을 겸비한 친절하고 모범적인 여인이다. 당대 사교계를 빛내고 있었으며 제정 러시아의 귀족 사회에서 부족함이 없는 조건에서 화려한 가정 생활을 영위한다. 그야말로 표면적으로 봐서는 어느 누구한테도 부러울 것이 없는 가정이며 여인이다.

반면 안나까레니나의 오빠, 오부론스키의 집은 모든 것이 뒤죽 박죽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전에 자기 집에 있던 가정교사와 바람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남편과는 더 이상 한집에서 살수 없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사흘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으며 남편은 그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혼 직전의 이러한 오빠 가정을 수습하기 위해 안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기차에 몸을 싣는다. 올케를 만나 잘 설득한 안나는 파경에 이를 오빠 가정을 극적으로 수습 해준다. 안나는 오빠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왔지만 오빠가 기다리던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안나카레니나가 브론스키를 만나는 순간, 마치 그녀의 내면에서 어떤 것이 넘쳐 흘러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이라도 만난 듯 안나까레니나의 눈빛은 섬광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젊고 잘생긴 옴므파탈의 브론스키의 생기와 매혹에 화답하는 자신이 내심 당황스러우면서도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마냥 끌림을 느끼는 듯 했다. 몇 번의 형식적 거절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가항력적으로 브론스키에게 빠져들고 매혹되는 듯 했다.

모스크바에서 오빠의 가정 문제를 설득력 있게 해결하고 황급히 페테르부르크의 집에 돌아온 안나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남편에 대해 성실하려던 굳은 각오는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편을 보는 순간 고루함과 켜켜히 누적된 권태에 지친 듯 하품만 연속 해댄다.

남편은 대화 도중 "누가 뭐라 해도 당신 오빠가 잘못이다"라며 고답적인 말 한마디 던지고 방에 불쑥 들어가 버린다. 참을 수 없이 심연에 밀려오는 깊은 외로움과 혐오감까지 휩싸여 오면서 두 사람 사이는 영영 다시는 복구 되지 않을 상황으로 치닫는 듯했다.

브론스키도 말할 필요가 없이 안나까레니나와 마주하는 순간, 안나의 고혹적이고도 아름다우며 우아한 자태에 휙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브론스키는 안나의 귀향 열차, 여름 별장, 심지어는 집에까지 끈질기게 안나를 따라 다니며 혼연 일체, 일심동체가 된다.

안나까레니나가 머무는 곳, 어느 곳이던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인 사랑 속에 휘감긴다. 안나의 말 한 마디, 눈빛과 몸짓 하나에도 브론스키는 사랑의 엑스터시 (ecstasy)를 강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급기야는 다소 피곤해 하는 안나를 위해 브론스키는 최고의 직업도 팽개치고 이탈리아로 밀월 여행을 떠나 6개월여 동안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한다. 두 사람은 점점 치명적이고도 불멸의 사랑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서로는 깊은 사랑에 빠져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부유하고 생기발랄한 미남, 말을 잘타는 멋진 귀족 청년 브론스키와 아름답고 세련되며 우아한 자태와 교양미 넘치는 귀부인, 안나까레니나 와의 만남은 그들 둘 사이에 급작스럽고도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사랑의 굴레 속에 하염없이 엉켜 들어 간다.

두 사람의 삶속에 불쑥 불쑥 개입하는 거대한 힘과 우연과 비이성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이고 어쩔 수 없는 힘, 강렬한 사랑에로의 힘에 의해 서로에게 빠져 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안간 힘을 다하더라도 두 사람은 사랑이란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점점 빠져 드는 듯 했다. 마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여,

평온하기만 했던 두 사람의 삶의 조건들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마냥 우호적이던 주변의 인간관계도 불륜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의 사랑에 냉대와 시기, 질투와 수근거림의 대상으로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나와 브론스키는 그들만의 사랑을 유지해 가면서 꿋꿋하게 버텨 나간다.

심지어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듯한 가정을 뛰쳐나간 안나는 자신의 불륜을 눈치 챈 남편에게 당당히 자신의 브론스키와의 상황을 먼저 털어 놓고 아들 양육은 자신이 맡겠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당당한 안나까레니나의 모습이 멋지다는 생각 마져 든다.

남편 케레닌은 보수적인 귀족이자 고위공직자로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 인생역정에서 결정적이면서도 커다란 흠결이 생긴 파장을 최소화 하려고 안나를 설득하고 때로는 경고하며 안간힘을 쓰면서 수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는 "당신이 지각없는 행동을 한다고 사교계에서 말들이 많더군, 모두 헛소문 이겠지만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고 있어요. 당신 감정이야 양심에 달려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결합한 부부이니 아내의 의무는 지켜줘요."

"불륜 행위는 그 부부간의 결합을 끊는 행위야, 그런 행동은 벌을 받을 수 있어, 당신과 나를 위해 한 말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신 앞에서 서로 서약 하였으니 이혼은 안되며, 따라서 아들 양육도 내가 맡겠오."

"부인으로서의 권리는 누리게 하겠으니 하인들에게 소문나지 않도록 앞으로 주의하시오"라고 간곡히 환기하며 남편 케레닌은 다른 남성과 불륜을 저지른 부인 안나에 대해 너그럽고도 차분히 충고하고 설득한다.

그러나 안나까레니나는 남편의 관대한 충고와 주의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8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온 과거는 어느새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까마득한 세상의 일처럼 여기며 한사코 남편에게 아들 세료자의 양육을 포함한 이혼을 요구한다.

오로지 브론스키와의 사랑이 전부가 되어버린 가운데 그녀는 브론스키만 옆에 있어 주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고 불편한 현실에 비굴하게 회피함도 없이 당당히 맞설 기세이다.

한편, 얼굴만 떠올려도 시름을 잊을 것같이 사랑하는 여인, 키티의 저택을 방문한 레빈은 키티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놀림을 당한다.

"시골은 겨울엔 따분 하겠네요. 어머니께선 당신이 미개인처럼 살고 있대요. 옷도 촌스럽게 입고요"라는 키티의 말에 레빈은 수줍게 미개인은 아니고 문명의 혜택도 누린다고 가볍게 응수한다.

레빈의 "결혼 해주세요"라는 청혼에 이미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가있는 키티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럴 수 없어요" 라고 대답한다.

또한 키티의 주변 사람들도 레빈을 향해 시골 분이 향락과 사치의 도시엔 웬일이냐며 소작농들이 일은 안하고 술만 마셔 대서 골치 아플 것이고 품격이 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도 없을 것이라며 비아냥 섞인 말을 해댄다. 완전히 촌놈 취급해도 레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다.

레빈은 꿈결에서도 "세상 시름을 잊게 해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잠꼬대까지 할 정도로 아름답게 떠올리던 키티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한 배신감은 물론, 향락과 허영의 도시생활과의 인연을 접고 시골 농장에서 한가하게 농민들과 삶을 영위해 나간다.

레빈, 그의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날을 지탱해 주는 것은 오직 일 하나인 듯, 있는 힘을 다해 농장에서 벼베기 등, 일에만 몰두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불만이 일거나 화가 나면 낫을 들고 풀을 벤다. 그러면 그의 마음과 영혼이 평화로워 짐을 느끼는 듯 했다.

"이젠 일을 하게 되면 즐거운 만족감과 해방감 마져 느낀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힘들이지 않고 풀을 베는 것이다. 나는 농부들만큼 깨끗하게 낫질을 잘 한다.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내가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낫질이 되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하는 등 그는 일을 통해서 시간을 잊고 얼마만큼 하루가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에 몰입하는 듯했다.

"내가 아니라 어떤 외부의 힘이 마술같이 작용해 저절로 규칙적으로 일이 되는 것이다. 내겐 가장 축복받은 시간이다." 레빈은 이와같이 그야말로 시골 농장에서 무아지경, 농부들과 어울려 일에 몰입해 있었다.

또한 오랜 좌절감과 단절을 극복하고 외국에서 병을 치료하고 돌아온 키티와 레빈은 다시 사랑을 되찾는다. 키티와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을 통해 레빈은 평온하고 자연스러우며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삶을 지탱해 나간다. 고통 후에 찾아온 행복감에 젖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안나까레니나는 순간적이고 불가항력적이며, 비자발적이고 운명적 사랑 때문에 번민하고 좌절하며 격정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 깊게 빠져들게 된다. 또 주변 여건과 브론스키와의 사랑도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청혼에 거절을 당하는 등, 마디마디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쟁취한 레빈의 사랑과 삶은 점점 튼실하게 성장하고 좋아 지고 있는 반면, 안나까레니나의 사랑과 삶은 순간적이며 격정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이루어졌듯, 빠르게 역주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쏠려 있던 키티로 부터 청혼에 실패하여 도시를 떠나 농부들과 어울려 풀베기를 하면서 천우신조로 키티와 결혼한 레빈은 안나까레니나와는 사뭇 확연하게 대조적인 삶을 영위한다.

안나는 브론스키와 이탈리아 밀월여행을 접으며 남편 케레닌에게 편지를 쓴다. "아들과 떨어져 지낸 시간은 고통이었어요. 아들을 보내 줘도 좋고 찾아 가도 좋습니다.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도움을 부탁드리는 마음도 간절하답니다."

남편, 커레닌은 아내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다고 말하나 식모는 모든 걸 순수하게만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충고 하며 진정하게 아들을 사랑하는 것도 의심스럽고 이미 죽었다고 말해준 어린 아이의 감정을 가지고 놀아서는 안된다며 만남에 대해 완곡히 반대한다. 안나까레니나는 사랑하는 아들과의 만남도 녹녹치가 않아 보였다.

한편 브론스키 어머니는 진급을 포기한 아들에게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데 눈먼 열정 때문에 장래를 포기하는 거냐"면서 안나 하고 앞뒤 없이 뛰어 드는 걸 한사코 말린다. 브런스키 주변도 안나와의 사랑에 대한 응원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젊은 처녀를 쫓아다니는 건 놀림 거리지만 유부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정열적이고 멋있어 보이지, 여자는 순결하고 정숙해야 하고 남자는 용기가 있어야 해, 뭐 그러나, 너희는 우리 애들 교육상 우리 집에 초대는 곤란해"라며 브론스키의 누나도 입방아에 거든다.

또한, 안나 오빠 오브런스키는 안나에게 "잘 들어라 넌 남편이 아닌 사람과 사랑에 빠졌어. 불행한 일이지만 어쨋든 사실 이야, 남편이 널 용서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이제 문제는 남편과 함께 살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혼 문제는 네 남편, 케레닌에게 간청해 봤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안나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기대하던 케레닌과의 이혼도 난관에 부딪혀 안나는 모든 상황이 초조하기만 하다. 이혼을 하지 않으면 브론스키와  결혼은 커녕 두 사람 사이에 출생한 아이도 남편 케레닌의 호적에 올려야 할 상황이니 말이다.

이렇게 안나의 주변 상황은 답답하고 숨이 막히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안나는 남편, 케레닌이 한사코 만나기를 거절하는 아들 세료자를 몰래 만나고 브론스키와의 사이에 임신한 아들을 유산한 후부터 우울증과 슬픔에 시달린다. 또한 그 점을 달래기 위해 아편을 수시로 마시기 시작한다.

또 브런스키와 함께 오페라 공연 관람가는 문제로 심하게 다투고 그의 어머니가 며느리감으로 여기며 함께 다니는 여인, 소로키나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한다. 안나는 "당신이 젊은 여자랑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기분 일거냐"며 질투에 찬 눈으로 심하게 따지며 다툰다.

"왜 함께 가면 안되냐. 당신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난 여전히 사랑한다"라고 울부짓으며 함께 가자는 안나까레니나와 더욱 격렬하게 다툰다. 결국 안나까레니나를 설득 후, 브론스키는 안나카레니나를 집에 홀로 남겨 둔채 어머니와 소로키나 양과 나란히 오페라 감상을 한다. 그리고 안나까레니나는 외롭게 홀로 누워서 안절부절, 전전 긍긍하다가 아편에 또 손을 댄다.

안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몹시 괴롭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싸맨다. "아들을 못 볼 줄 알아, 더러운 매춘부야, 당신은 매춘부야 자식을 버리다니" 남편과 싸울때 남편이 던진 말이 비수같이 안나의 가슴에 꽂히는 듯 했다.

오매불망, 브론스키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전부처럼 여기며 올인(All in)한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곁에만 머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과 불안감에 벼랑으로 곤두 박질 치는 기분이 드는 듯 했다.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던 그녀, 결국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인 브론스키와의 사랑이 흔들림을 느끼면서 진퇴양난의 절망감에 빠져 든다.

그리고 남편과 신 앞에서의 서약을 버리면서 까지 기대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브론스키를 남겨두고 그와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인간은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유기체 세포로 만들어져 잠시 결합해 있다가 없어지는 것, 나도 그런 세포지"라고 형의 시체 앞에서, 또 안나의 죽음에 즈음하여 중얼거리는 레빈에게 키티는 임신 소식을 알린다. 주검 앞에서도 인류의 윤회는 계속 되고 평온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편 안나를 잃은 브론스키는 레빈을 만나,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고 전쟁이 은총이라며 이제 내 목숨은 나한테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고 전쟁터에서라도 총알받이로 라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한다.

극심한 고통을 격은 후에 느끼는 감정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내린 감정인 것 같았다. 브론스키의 진심과 무게감이 실린 말 같이 들렸다. 브론스키는 레빈의 배웅을 받으면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도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다. 그랬을까.

한편 레빈은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전처럼 무의미한 시간은 보내지 않을 것이다. 하루 하루 충만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행복할 뿐이다"라는 말을 통해서 평화롭고 안락한 생활속에서도 철학을 궁구하며 살아가는 레빈의 일상적 삶을 였볼 수 있었다.

"행복한 가정은 거의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여러가지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소위 '안나 까레니나 법칙'과 함께, 레빈과 안나까레니나의 서로 극명하게 다른 사랑과 삶의 방식이 강렬한 여운으로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은 영화였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