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5년 전 쯤의 일이다. 당시 이용섭 대통령혁신수석비서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의 개인 블로그에 ‘혈세(血稅), 적절한 표현인가’란 글을 올렸다.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이다. 당시 이 수석은 기재부 세제실장과 국세청장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혈세’란 표현은 다분히 선동적인 것이라면서 대신에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 ‘값진 세금’으로 순화해서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이 수석의 이 같은 언급은 참여정부의 복지예산이 증가하고, 부동산 세제가 강화되자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세금폭탄’이란 말을 물 쓰듯 하면서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일어날까를 우려하여 나온 것으로 해석됐다.

아마 기자 역시 첫 직장이 공직이었고, 또 청와대 수석이었다면 이 주장에 백번 박수를 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무슨 개딱지 같은 소리냐’고 할 수밖에 없다. 당시 이수석의 글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온다.

지금부터 왜 그 소리가 개딱지 같은 것인지를 밝힌다.

지난주 감사원이 사상 처음으로 19개의 대통령 자문위원회 중 4곳에 대한 감사를 해봤더니 친문성향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에게 돈이 편법으로 지급된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엔 문재인 정부 초창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용섭 현 광주시장도 포함돼 있었다. 딱 여기서 생각난 것이 ‘혈세’라는 단어였다. 이 돈을 집행‧관리하는 사람들이 또 받는 사람들이 세금이라는 것이 당시 이용섭 수석이 주장했던 것처럼 혈세가 아니라 ‘소중한 세금’ ‘값진 세금’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이런 편법이 자행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다.

이는 조족지혈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주 국회에 제출한 '최근 3년간 국고보조사업 관련 부정수급 적발 및 환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고보조사업 부정수급 적발 건수가 20만6152건이었다. 금액은 862억6000만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보다 건수는 5배 이상, 금액은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여기에 지난해 지자체 보조의 부정수급 적발 건수도 10만9561건이었다. 한마디로 세금이 줄줄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세금은 눈먼 돈이 아니라 ‘혈세’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줄줄새었을까.

세금! 내가 내는 돈, 내 엄마 아빠가 내는 돈, 정말 밤잠 못자고 일해서 국가의 운영을 위해서 낸 돈, 소중한 세금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관리되었을까? 이 우문에 누가 또 세금은 혈세가 아니라 값진 세금이라고 반박을 해보시라.

때마침 여당의 한 의원이 최근 10년간 고소득사업자들의 세금탈루가 10조원에 달한다는 자료를 내놓으면서 국세청이 이들에게 5조2천억 원에 이르는 세금을 부과했으나 실제 징수한 액수는 3조6000억 원(69%)에 불과하다면서 징수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소득사업자의 세금 탈루는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여서 공평과세를 위해서라도 탈루위험이 높은 고소득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확대하고 부과세액에 대한 징수율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내가 낸 세금이 줄줄 새고, 엉터리로 관리되고 있는데 징수율이 높아질까라고 반문해 보면 참 어이가 없다. 그래서 세금이라는 단어, 앞으로는 ‘혈세’라고 부르면 어떨까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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